지역 건설업계는 살얼음판
지난 12일 광주광역시의 한 중견 건설사의 현장 사무실에 아파트를 분양받은 입주 예정자 수십 명이 몰려들었다. 중도금 무이자 조건으로 건설사와 분양 계약을 맺었는데, 전날 금융회사로부터 “계약자가 직접 이자를 내야 한다”는 통보 문자를 받았기 때문이다. 자금난에 빠진 이 건설사가 입주 예정자 대신 금융회사에 내야 할 이자를 제때 납부하지 못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한 입주 예정자는 “입주 때까지 1000만원 가까이 되는 돈을 갑자기 감당해야 하는 것도 문제지만, 공사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지난 12일 태영건설의 워크아웃(기업 개선 작업)이 시작되면서 금융권을 중심으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의 여파가 금융 부문으로 전이되는 큰 고비는 일단 넘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최신 건설·부동산 산업 관련 통계와 수치들은 부실 위험의 확산 가능성을 계속 경고하고 있다. 15일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은행으로부터 받은 ‘금융업권별 건설·부동산업 기업 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현재 전체 금융권의 건설·부동산업 대출 잔액은 608조5000억원으로 작년 2분기(597조6000억원)보다 10조9000억원(1.8%) 늘었다.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큰 비은행권의 건설업 대출 연체율은 작년 2분기 4.77%에서 3분기에는 5.51%로 높아졌다. 이 같은 연체율은 2013년 이후 10년 만에 가장 높다. 지금까지 작년 2분기 통계까지만 알려졌는데, 최신인 3분기 통계에서도 건설·부동산업에 대한 대출 증가와 연체율 상승이 확인된 것이다. 특히 현장을 직접 살펴보면, 부동산 시장의 가장 약한 고리인 지방은 준공 후에도 계약자를 구하지 못하는 ‘악성 미분양’ 증가와 건설업체 부도로 오히려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다.
그래픽=양인성◇벼랑 끝 몰린 지방 건설사
최근 자금난을 견디지 못해 부도 처리되거나 법정관리에 들어간 지방 건설사는 늘고 있다. 이달 초 울산 지역 1위 건설사인 부강종합건설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울산 건설업계 관계자는 “지역 1위 업체까지 법정관리를 신청해 하청업체들에 미치는 파장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부도난 건설업체는 총 21곳으로 전년도에 비해 7곳(50%) 늘었다. 특히 매달 1~2건 수준이었던 부도 업체 수가 작년 12월엔 8곳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부도난 건설사 중 아파트를 직접 분양하는 종합건설업체는 9곳인데, 이들 모두 본사가 지방이다.
법정관리 신청도 잇따르고 있다. 작년 12월에만 건설사 10여 곳이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새해 들어서도 인천 영동건설을 비롯한 건설사 4곳이 법정관리 절차에 돌입했다. 작년 12월 이후 법정관리 건설사 역시 대부분 지방 기업들이다.
지방 건설업체들은 ‘태영건설 사태’ 이후 정부가 ‘PF 옥석 가리기’에 나서겠다고 한 것도 큰 부담이다. 지방 건설 현장은 사업성이 떨어지는 곳이 많아, ‘부실 PF 정리’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 지방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지금까지 간신히 만기 연장을 해오던 사업장에 대해 금융회사가 자금 회수를 시작하면, 자금력이 없는 지방 건설사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쌓이는 악성 미분양... 앞으로 더 문제
지방 건설사들은 2020년 전후 부동산 호황기 때, 저금리로 돈을 빌려 택지를 매입한 뒤 이전보다 큰 규모의 아파트·오피스텔 개발에 나선 곳이 많다. 이때 시작한 사업들이 최근 대규모 미분양이 나거나 착공조차 못 해 부실 현장이 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8일 1순위 청약 신청을 받은 경북 울진군 ‘후포 라온하이츠’는 60가구 모집에 한 명도 신청하지 않았다. 충북 제천 ‘제천 신백 선광로즈웰’ 역시 209가구 모집에 신청자는 한 명뿐이었다.
전국 미분양 주택은 작년 1월 7만5359가구에서 11월 5만7925가구로 줄었지만, 오히려 악성 미분양으로 통하는 ‘준공 후 미분양’은 같은 기간 7546가구에서 1만465가구로 39% 늘었다. 전국 악성 미분양의 80%인 8376가구가 지방에 몰려 있다. 악성 미분양은 돈을 들여 건물을 다 지어 놓고도 분양이 안 돼 자금을 회수할 수 없는 만큼, 건설사 부도로 직결될 가능성이 크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미분양 아파트 중 일부는 다주택 규제를 풀더라도 쉽게 수요가 몰릴 가능성이 적은 게 더 우려스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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